큰아들 Joshua는 어려서부터 한국어을 퍽 잘했습니다. 2세이지만, 장성해서 우리만큼 한국어를 할 수 있도록 키워보자는 신념과 욕심 반반으로, 저희 부부도 나름대로 정성을 들이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그 아이가 언어에 탤런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9살때 교회 주일한글학교에서 시험을 보았는데, 26문제 중에 22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대로 기특하다 생각하며 틀린 문제들을 살펴보는데, 우리 부부의 웃음을 터트리는 문제 하나를 보았습니다. 빈칸에다 옳은 단어로 채워 넣는 문제로… “우리 형이 너무 아파서 방바닥에서 (빈칸) 구르고 있습니다” 라는 문장 아래 4개의 답이 있었는데, A)두근두근 B)슬금슬금 C)데굴데굴, D)둥실둥실 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슈아가 옳은 답이라고 동그라미를 친 것이 바로 “둥실둥실” 이었던 것인데… 그러니까, 조슈아의 답대로 읽어보면, “우리 형이 너무 아파서 방바닥에서 둥실둥실 구르고 있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아내와 저는 한참동안 웃었고, 지금도 생각이 날 때마다 아름다운 추억의 미소를 짓곤 합니다.
말이란, 어떤 말을 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참으로 다른 결과들을 가져옵니다. 말을 잘못 사용함으로 인해, 가벼운 웃음을 자아내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민망하게도 하고,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며, 또는 더 나아가서, 한 영혼으로 하여금 오랫동안 신앙생활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반면에 잘 사용된 말은, 외로운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슬픈 이에게 위로가, 그리고 실망과 절망속에 있는 이에겐 큰 격려와 소망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한 영혼을 생명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라든지, “발 없는 말이 천리길을 간다”라고 했고, 또 서양 격언에도,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마치 솜옷 같이 따스하고, 사람을 해롭게 하는 말은, 가시덤불 같이 아프게 찌른다”라고 했는데… 그만큼 사람의 말은 중요하기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16:24은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했고, 그러므로 에베소서 4:29 말씀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한글반에서 “데굴데굴”을 “둥실둥실”이라고 답한 것은 귀엽게 볼수 있지만… 만일 주위의 형제자매가 삶의 고통으로 인해 “데굴데굴” 구르는 상황 가운데서, 우리의 말로서 “둥실둥실” 춤을 춘다면, 그것은 결코 덕이나 은혜가 될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을 신중히 하되, 듣는 사람에게 덕이 되는 선한 말을 하도록 늘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 이 글은 [월간 코리아뉴스] 2019년 6월호에 실린 문일명 목사님의 글입니다 –